The Impact of Li-Xuzhong(李虛中)"s Use of the Birth Hour in Four Pillars on the Development of the Myeongri-Science(命理學)
당(唐)의 이허중과 이허중 명술(命術)은 명리학의 초기 발전기에 자주 다루어지는 논점이다. 여러 논점 중에서 이허중이 생시를 사용했는가의 여부는 명리론의 발달 과정을 살필 때 반드시 논의해야 하는 대목이다. 이허중 이후에 송대를 지나서 근현대에 이르도록 이허중 명술이 생시를 사용했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꾸준히 있어 왔다. 그 이유는 이허중 명술을 담은 상세한 문헌이 없었고 여타의 문헌에서 편린들을 모아서 이허중 명술의 면모를 추측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본 논문은 한유가 지은 「이허중묘지명」(李虛中墓誌銘)의 내용을 해석하며 논제와 관련하여 논란을 증폭시켰던 기윤의 주장을 재조명하여 이허중은 생시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더 나아가 이허중이 생시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생시를 활용하고 있는 송대의 명리학과 직접적으로 연관 짓기 어렵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허중이 생시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논증한 본 논문의 고찰 결과가 이허중과 명리학의 초기 발달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보탬이 되는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
Authors
- D.W. Kim
- Kyoung-soo Cin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Journal of the Korea Contents Association
- Published
- 2024-10-31
- DOI
- https://doi.org/10.5392/jkca.2024.24.10.846
- Primary Topic
- Medical Research and Treatment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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