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ation of the ‘Imperial Fora’ during the late Republic and Early Principate and its Meaning
본고에서는 ‘황제들의 포룸’ 건설 과정을 통해 공화정 말기부터 원수정 초기까지 새로운 포룸을 조성하는 것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이후 시작된 새로운 포룸의 건설은 공화정기 공공 건축의 양상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공화정기 임페리움 보유자의 서원을 통해 진행되던 신전 건설이나 개인적 명성의 과시를 위한 기념비 건립과는 달리, 이들 포룸의 조성은 명분과 실리의 측면에서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황제들의 포룸은 로마 인민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기능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황제들의 포룸에는 대외 전쟁 과정에서 획득한 여러 전리품이 ‘전시’되었고, 이는 로마 인민의 전통으로 동화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임페라토르’로서의 황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황제들의 포룸은 단순한 개인적인 기념비를 넘어선, 일종의 국가적 ‘전쟁기념관’이었다. 특히 기존의 로마 포룸이 아닌 황제들의 포룸을 중심으로 전쟁 기념 행위를 집중시킨 아우구스투스의 조처는 제정기 포룸이 가지는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내전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황제들의 포룸’은 건설된 이후 국정 실무를 보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이는 새롭게 등장한 포룸이 1인통치자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공간으로 황제들의 포룸이 기능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이 더욱 발전하여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황제들의 포룸 중 가장 마지막에 건설된 트라야누스의 포룸이다.
Authors
- Hanseok Ko (ORCID: https://orcid.org/0000-0002-8744-4514)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Western History Review
- Published
- 2024-09-30
- DOI
- https://doi.org/10.46259/whr.162.1
- Primary Topic
- Classical Antiquity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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