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gnition and commemoration of the 6 February 1934 ‘riot’ : From the crisis of the Republic to the ‘founding myth’ of the National Rally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파시스트 쿠데타’로 간주 되었던 1934년 2월 6일 위기와 함께, 프랑스에서 파시즘은 현실적인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이후 코민테른조차 사회당과 공산당의 반파시즘 연대를 인정하는 정치적 대전환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프랑스에서 무솔리니의 로마진군이나 히틀러의 뮌헨폭동과 같은 파시스트의 위협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훗날 민족전선의 네오-파시스트들과 그 후예들이 1934년 2월6일 폭동을 대의를 위한 희생의 출발점으로 여기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프랑스의 네오-파시스트들은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미디어 매체를 만들고, 이를 통해 로베르 브라지약과 1934년 2월 6일 폭동을 기억하면서 민족전선의 창립신화로 이 사건을 기념 해 나갔다. 결국 1930년대 좌파에게 공화국의 위기를 만든 사건으로 인식되었던 2월 6일 폭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극우세력에 의해 민족전선의 창립신화로 새롭게 기억되었다.
Authors
- Dong-Kyu Shin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Cogito
- Published
- 2024-10-31
- DOI
- https://doi.org/10.48115/cogito.2024.10.104.7
- Primary Topic
- Eastern European Communism and Reform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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