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reading Friedrich Schlegel’s Lucinde and Herman Melville’s Bartleby, the Scrivener: Focusing on the Perspective of Inaction as Action
이 글은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하지 않을 때 새로운 가능성이 도래한다. 이를 고찰하기 위해 프리드리히 슐레겔의『루친데』와 허먼 멜빌의「필경사 바틀비」두 개의 텍스트를 함께 읽는다. 그럼으로써 무위의 행위가 적절하게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 글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두 텍스트를 매개로 오늘의 우리 모습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는 것이다.<br/> 칸트는 노동의 필요성을 강조한 반면 루친데의 화자는 게으름의 상태를 옹호한다. 신성한 행동이 아닌 신성한 무위가 요구된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독일 낭만주의는 근대적 세계관이 보이는 문제적 지점을 탈은폐한다. 바틀비는 바로 이런 식으로 세상에 존재한다. 바틀비는 자신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한다. 그는 자신을 멈춰 세움으로써 세상의 일상적 흐름에 개입한다. 그의 수동성 자체가 긍정적 의미를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부정적인 것이 실제로는 긍정적일 수 있다고 말하는 단계를 지나(『루친데』), 긍정의 세계에서 부정 그 자체로 기입되어 있는 긍정적 부정성(「바틀비」)을 만나게 된다.
Authors
- Jin‐Hwan Kim (ORCID: https://orcid.org/0000-0001-8229-9613)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Humanities Contents
- Published
- 2024-09-30
- DOI
- https://doi.org/10.18658/humancon.2024.09.65
- Primary Topic
- German Literature and Culture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 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