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elopment and operation transportion route to Shilla in Ungjin period of Baekje
본고는 백제 웅진기 신라 방면 교통로의 정비 과정과 운영 양상을 검토한 글이다. 지리적 조건을 감안할 때, 웅진기 신라 방면 교통로는 크게 두 가지 경로로 이해된다. 첫째는 ‘공주-연산-진잠-대전-회덕’이며, 둘째는 ‘공주-연산-진산-추부 및 금산’이다. 이들 경로가 신라와의 교섭·교류에 활용된 백제 웅진기의 신라 방면 간선 교통로로 이해된다.<br/> 이 글에서는 沙峴 관련 옛 지명과 위치, 사현 인근에 위치한 백제계 산성과 주변 교통로 양상 등의 근거를 종합하여, 동성왕 12년(490)년에 축조한 沙峴城ㆍ耳山城을 각각 공주 양화산성과 논산 노성산성으로 비정해보았다. 또한 기존 연구 성과를 토대로 498년에 축조한 沙井城을 대전 사정동산성으로, 501년에 목책을 설치한 炭峴의 위치를 진산 방면의 대둔산 주변 고개로 파악해보았다. 이들 관방 시설의 위치로 볼 때, 『삼국사기』 동성왕대 축성 기사에 보이는 신라 방면 성곽은 지역 거점 사이의 군사적 요충지에 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웅진 천도 직후 백제는 새 수도 웅진과 지역 거점을 이어가는 官道의 구축·정비에 집중하여 기본적인 틀을 완성한 후, 지역 거점 사이의 요충지 및 주요 분기점에 관방 시설을 추가해간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 면에서 『삼국사기』의 사현성ㆍ이산성ㆍ사정성·탄현 목책 축조기사는 백제 東界 방향으로의 단계적ㆍ추가적인 官道 정비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br/> 5세기 중반~6세기 중반 나제 관계는 신라 방면 官道 및 방어체계의 정비ㆍ운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5세기 말까지 우호적으로 전개된 양국 관계 속에서 백제는 수도 웅진을 중심으로 새롭게 신라 방면 교통로를 구축하여 정치적 교섭에 활용하였다. 반면 양국 관계의 긴장감이 조성되기 시작한 6세기 이후에는 점차 신라에 대비한 방어체계 구축에 집중하면서 교통로를 정비ㆍ운영하였다. 따라서 백제 웅진기에 조성된 신라 방면 官道와 관방 시설은 군사적 공조를 위한 교섭·교류의 현장이자, 한편으로 신라와의 경쟁이나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방어체계의 일환이라는 양면적인 성격을 모두 갖고 정비·운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Authors
- Jong-Uk Park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Journal of Korean Ancient History
- Published
- 2024-09-30
- DOI
- https://doi.org/10.37331/jkah.2024.09.115.251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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