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the ‘Middle(中)’ Idea of Confucianism, Buddhism, and Taoism Thought: The Problem of Binary(二項) Consequences and the Possibility of the Ternary(三項性) Category: Hattori Unokichi’s Theory of Feng Shui"
본 연구는 유학(儒學) 사상과 불교(佛敎) 사상과 도가(道家) 사상의 중(中) 관념에 대한 상호 비교를 수행하였다. 그럼으로써 유불도 사상에서의 중(中)이라는 관념에는 근원적인 이항(二項)적 전제가 함축되어 있음을 밝혔다. 이때 이러한 이항성에 내포된 자기지시적인 역설의 문제 때문에 유불도 사상에는 그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중(中)에 논리로는 다다를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기존의 유불도에서의 중(中) 관념에 대한 이항적인 논리를 넘어선 삼항(三項)적인 논리의 가능성을 살펴보았다.유불도의 중(中) 관념의 근원적인 이항성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 중(中)으로 상징되는, 즉 궁극적이고 완전한 절대적인 진리를 이항성을 통해 지시한다는 특징이다. 두 번째는 언어와 사고의 근원적인 이항성의 문제로 인하여 그러한 궁극적이고 완전한 진리, 즉 중(中)을 표현해 내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는 이러한 이항성의 한계로 인하여 유불도가 각각 중(中)에 대한, 논리를 초월한 표현 방식과 언어를 제시하였다는 점이다.본 연구에서는 직관과 신비주의가 아니라, 언어와 비(非)언어의 이항을 넘어선 그 중간도 아닌-왜냐하면 그 중간은 또한 이항적인 규정이므로-언어의 타자(他者)를 언어와 조화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다. 말하자면 제3의 언어, 제3의 논리의 가능성이다. 이것은 논리와 비(非)논리의 이항적 대립이 아니라, 논리의 제3자를 수용하는 제3의 논리이다.본 연구는 이항성의 자기지시적인 역설은 ‘일항(一項)’, 즉 자기동일성의 동일한 이항적 변주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하나’와 ‘둘’의 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동일성의 논리를 벗어나야 하고 동일성의 논리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동일성의 이항적 대립자나 부정이 아니라 바로 ‘차이’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항성을 벗어난 논리로는 ‘하나’를 ‘셋’으로 나누는 ‘셋’의 논리가 바로 이러한 동일성을 벗어난 ‘차이’와 일맥상통할 수 있다. 한국철학적인 맥락에서 이야기되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라던가 삼태극(三太極)과 같은 논리들이 바로 이러한 동일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차이를 말할 수 있는 존재론적 단초라고 본다.오히려 현대철학에서의 ‘차이’는 ‘동일자’와 대립되는 개념이면서, 바로 그 동일자와의 대립성 때문에 형식상 또 다른 이항성의 테두리 안에 포섭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를 셋으로 나누는 《천부경(天符經)》의 석삼극(析三極) 같은 개념은 동일자를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차이를 동일자와 조화시킬 수 있는 철학적 상상력과 존재론적 가능성을 우리에게 암시해 준다. 왜냐하면 석삼극(析三極)의 ‘셋’은 ‘하나이면서 둘’이 아니라 ‘하나이면서 셋’이기 때문이다.
Authors
- Chan Hee Lee (ORCID: https://orcid.org/0000-0001-5572-0767)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Critical Review of Religion and Culture
- Published
- 2024-09-30
- DOI
- https://doi.org/10.36429/crrc.46.6
- Primary Topic
- Japanese History and Culture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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