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velopment of Military Elite Groups in the ROK Army under the influence of the Korean Military Advisory Group(KMAG)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 국내 정세는 불안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은 중요했다. 이 중에서도 군 수뇌부를 구성하는 고급 장교단을 관리하는 문제가 핵심이었다. 한국 국방부와 주한미군사고문단은 정치적으로 안정적인 군 장교단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양측의 접근 방식은 차이가 있었다.<br/> 초대 국방부장관인 이범석은 반공주의에 기반한 군대를 건설하려고 했다. 군대의 정치사상을 중시하는 이범석의 태도는 군사고문단과 갈등을 초래했다. 이범석은 정치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광복군과 일본군 출신 군사경력자들을 기용했다. 군사고문단은 미군정 시기에 육성한 국방경비대 출신의 장교들을 한국 육군의 수뇌부에 기용하려고 했다. 이로 인해 이범석은 초기부터 군사고문단과 충돌했다. 군사고문단은 미국의 군사원조를 매개로 한국 국방부에 압력을 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범석은 군부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1948년부터 1949년 초까지 이범석은 군사고문단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군 수뇌부의 인사에 그의 의도를 관철할 수 있었다.<br/> 이범석은 이승만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 관계에 있었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이범석은 국방부장관에서 물러났다. 1949년 3월 신성모가 국방부장관에 취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신성모는 군사고문단에 협조적이었고, 이범석이 육성한 중국군 출신 장교단에 비판적이었다. 육군 총참모장에 30대의 채병덕이 임명된 것도 군사고문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채병덕은 이범석과 친분이 있었으나, 이범석이 지지하는 40∼50대의 고급 장교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채병덕과 군사고문단의 이해관계는 일치했다. 채병덕과 갈등을 빚던 제1사단장 김석원이 해임된 후 군 수뇌부는 20∼30대의 청년 장교들이 장악하게 되었다. 6·25전쟁직전 한국 육군 수뇌부는 채병덕을 중심으로 하는 청년 장교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Authors
- Sung Wook Yoon (ORCID: https://orcid.org/0000-0003-2150-2061)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Sahak Yonku The Review of Korean History
- Published
- 2024-09-30
- DOI
- https://doi.org/10.31218/trkh.2024.9.155.151
- Primary Topic
- Korean Peninsula Historical and Polit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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