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stitutionalization of Monogamous Legal Marriage and the Issue of Concubinage in Divorce Lawsuits in Colonial Korea : In Relation to the Cases of Imperial Japan
이 논문은 식민지 조선에서 일부일처 법률혼이 제도화 되면서 첩제가 법적으로 구축(驅逐)되어 가는 추이를 고찰하였다. 먼저 제국 일본에서 첩제가 폐지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들을 검토하였다. 제국 일본에서의 추이가 식민지 조선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식민지 조선에서 일부일처 법률혼의 제도화와 그것이 조선 사회에 미친 파장을 살핀 후, 끝으로 축첩문제가 이혼 소송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는 지를 분석하였다. 보다 많은 판결문들을 통해 식민지 조선에서 축첩 행위가 부정되어 가는 추이와 그 특징을 추적하기 위해 고등법원 및 하급심, 특히 경성복심법원의 판결문을 새롭게 검토하였다.<br/>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다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첩계약론’과 같이 첩의 법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가들 사이의 논의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문명화의 기치 아래 ‘일부일처’를 향해 달리고 있던 일본에서 이들 논쟁은 이미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이다. 첩은 일부일처 법률혼의 위반자로서 법적 보호의 대상이 아닌 존재로 결론이 났고, 논쟁의 중심축은 이혼 소송에서 축첩과 이혼 원인으로서의 ‘중대한 모욕’ 문제로 이동되었던 것이다. 사실상 후자의 논쟁은 축첩의 두 주체 중 가부장제의 이해만이 고려된 것이었는데, 식민지 조선에서는 후자의 것만이 논의의 대상이었다. 즉 식민지 조선에서는 논쟁 과정에서 확립된 일본식 가부장제의 이익을 옹호하는 방식의 판례만이 작동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가족’의 경계 너머의 여성들에 대한 ‘타자화’ 전략을 통해 ‘일부일처’제와 ‘근대 가족’을 구성해 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족의 경계 밖에 존재하는 개인들의 법적 지위나 권리에 대한 논쟁의 부재는 결국 ‘제도적 가족’의 범주 밖에 존재하는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회로 한국을 이끄는 결과를 가져왔다.
Authors
- Yang-Hee Hong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YEOKSA YEONGU The Journal of History
- Published
- 2024-09-30
- DOI
- https://doi.org/10.31552/jh.2024.09.51.245
- Primary Topic
- Marriage and Sexual Relationship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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