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eight of ‘Revolution’ : Research on revolution naming effects in 4.19
1960년 4.19는 한국 사회에서 혁명에 대한 오랜 금기가 깨진 사건이었다. 혁명은 4월 19일의 대규모 시위가 아니라 4월 26일 대통령 하야 이후에 선포되었다. 4.19를 규정함에 있어 혁명 개념은 다른 개념과 경쟁하였으나 우위를 차지하였다. 4.19 직후 학생과 지식인은 4.19가 혁명이지만 미완의 혁명이며, 앞으로 장기적 혁명과제를 남겨두고 있다는 점에 동의하였다. 대학생은 혁명의 주체세력으로 설정되었으나 실제 혁명을 이끌 수 없어서 4.19는 ‘기수없는 혁명’이 되었다. 혁명과업을 맡은 허정 과도정부, 장면 민주당 정부는 모두 혁명 규정으로 발산된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했고, 혁명은 또 다른 주인을 찾는 와중에 쿠데타를 모의하고 실행한 군부 세력이라는 새로운 주체세력을 만났다. 대학생과 지식인은 혁명 담론의 논리 속에서 5.16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인정하였고, 이것은 4.19가 혁명이라는 명명과 정세 인식의 결과였다.
Authors
- Seong Ho Byeon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Korean Political Science Review
- Published
- 2024-09-30
- DOI
- https://doi.org/10.18854/kpsr.2024.58.3.001
- Primary Topic
- Lexicography and Language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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