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ortion of Nobi(奴婢) by the Royal Family in King Yeonsan[燕山君] Period and the Causes of Coup of Jungjong[中宗反正]
이 글은 연산조 왕실의 奴婢 奪占 행태가 양반지배층의 離叛을 촉진하였고, 그것이 반정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음을 논증함으로써, 君臣權力關係의 추이와 노비 문제의 양상을 연관지어 이해하는 단초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성종조 이래 왕실의 재정 소요가 확대되는 추세 속에서 왕실은 內需司 奴婢에 대한 完護를 통해 身貢 수입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하였고, 이에 헐역을 부담하는 내수사 노비에 대한 公私賤의 투속이 잇따랐다. 宣頭案에 付籍된 노비에 대해서 쟁송을 불허하는 원칙이 관철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公私賤의 투속을 容隱하는 내수사의 행태는 사실상 왕실에서 公私賤을 탈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이와 같은 추세는 연산군 시기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더구나 양반관료들에 대한 君主權의 우위를 강조하고 공공연하게 私情을 앞세우는 연산군의 태도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었다. 무오사화를 계기로 군주권의 위력을 실감한 연산군은 公賤은 물론 양반지배층이 소유한 私賤까지도 탈점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주인을 배반하고 왕실에 투속하는 노비들이 잇따르고 있었다. 노비를 탈점함은 물론 기왕의 主奴關係를 단절시키려는 연산군의 행태에 대한 양반지배층의 원망과 불만은 점차 커지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사화를 거치면서 역대 조정의 공신과 재상들이 잇따라 숙청되고 臣權이 극도로 위축되면서 연산군의 행태에 대한 비판은 봉쇄되어 있었다. 양반지배층의 불만은 반정으로 귀결되었고, 그에 따라 노비 문제의 추이 또한 급반전되었다. 반정 주체세력은 노비를 탈점하여 주인을 배반하게 하였다는 것을 연산군의 罪狀 가운데 하나로 내세우고 있었고, 자신들이 내세운 반정의 명분을 실천하고자 연산조에 왕실이 탈점한 노비들을 本主에게 刷還하고 탈점 관련자들을 엄벌하였다. 또한 반정 이후 양반관료들은 제아무리 임금에게 충성하였어도 주인을 배반한 노비는 功臣이 될 수 없다거나, 주인이 노비를 죽인 경우에 임금의 명으로도 노비들은 주인을 고발할 수 없다는 원칙을 관철하고 있었다. 나아가 신료들은 왕실의 私藏 확대를 힘써 제한하려 함으로써 연산조의 弊風과 단절할 것을 중종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Authors
- Woon Choi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CHOSON DYNASTY HISTORY ASSOCIATION
- Published
- 2024-09-30
- DOI
- https://doi.org/10.21568/cdha.2024.09.110.69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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