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the Posthumous Reverence of Goryeo-sujeolshin in the Early Chosŏn Dynasty Period

이 글은 조선 전기에 이루어진 高麗守節臣에 대한 추숭 과정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어떠한 목적성을 가지고 추숭하였는지, 추숭 경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태조 이성계는 조선 건국 직후 즉위교서를 통해 고려 遺臣 56명을 지목하여 처벌하였다. 그러나 이성계는 곧 이들을 용서하여 조선사회로 수용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이색과 우현보의 추숭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기존 고위관료와의 추숭과 동일선상에서 이루어졌다. 반면, 권근의 절의 포창 상서를 통한 추숭은 다른 특징을 보인다. 권근은 국가를 창업한 이후 절의를 지킨 이들을 포창하여 후세 인신들에게 절의의 가치를 장려할 것을 주장하였고, 구체적인 사례로 정몽주, 김약항, 길재를 제시하였다. 태종은 이를 수용하여 포창하였다.태종의 절의 포창 이후에는 세종이 『삼강행실도』의 「충신도」에 정몽주와 길재를 수록하면서 충신의 대표자로 확립시켰다. 또한, 세종을 비롯한 조선 국왕들은 정몽주와 길재의 자손에게 관직을 제수하도록 하는 등 충신의 표상으로서 추숭을 심화하였다. 특히 16세기 후반에는 서견이 절의를 인정받아 추증되었는데, 고려수절신의 절의를 재조명하였음을 보여준다.한편, 15∼16세기에 걸쳐 이색과 정몽주가 문묘 종사에 논의되었고, 결과적으로 정몽주에 대한 문묘종사가 이루어졌다. 이들에 대한 논의가 가능했던 것은 유학적 업적은 물론, 추숭을 통해 도덕적 평가가 완료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몽주의 문묘 종사는 사림세력의 도통의 계보를 확립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에 따라 정몽주는 도학의 시조가 되었고, 길재도 이 계보에 포함되어 도학의 전승자로 인식하게 되었다.이러한 조선 전기 고려수절신 추숭 경향은 여러 인물로 추숭 대상을 확대하기보다는 정몽주와 길재를 대표자로 선정하고 그에 대한 선양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THE CHOSON DYNASTY HISTORY ASSOCIATION
Published
2024-09-30
DOI
https://doi.org/10.21568/cdha.2024.09.110.7
Primary Topic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Type
article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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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A Study on the Posthumous Reverence of Goryeo-sujeolshin in the Early Chosŏn Dynasty Period

Yeong-ung Bak
THE CHOSON DYNASTY HISTORY ASSOCIATION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article

A Study on the Posthumous Reverence of Goryeo-sujeolshin in the Early Chosŏn Dynasty Period

Yeong-ung B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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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글은 조선 전기에 이루어진 高麗守節臣에 대한 추숭 과정을 살펴보는 것을 통해 어떠한 목적성을 가지고 추숭하였는지, 추숭 경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태조 이성계는 조선 건국 직후 즉위교서를 통해 고려 遺臣 56명을 지목하여 처벌하였다. 그러나 이성계는 곧 이들을 용서하여 조선사회로 수용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이색과 우현보의 추숭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기존 고위관료와의 추숭과 동일선상에서 이루어졌다. 반면, 권근의 절의 포창 상서를 통한 추숭은 다른 특징을 보인다. 권근은 국가를 창업한 이후 절의를 지킨 이들을 포창하여 후세 인신들에게 절의의 가치를 장려할 것을 주장하였고, 구체적인 사례로 정몽주, 김약항, 길재를 제시하였다. 태종은 이를 수용하여 포창하였다.태종의 절의 포창 이후에는 세종이 『삼강행실도』의 「충신도」에 정몽주와 길재를 수록하면서 충신의 대표자로 확립시켰다. 또한, 세종을 비롯한 조선 국왕들은 정몽주와 길재의 자손에게 관직을 제수하도록 하는 등 충신의 표상으로서 추숭을 심화하였다. 특히 16세기 후반에는 서견이 절의를 인정받아 추증되었는데, 고려수절신의 절의를 재조명하였음을 보여준다.한편, 15∼16세기에 걸쳐 이색과 정몽주가 문묘 종사에 논의되었고, 결과적으로 정몽주에 대한 문묘종사가 이루어졌다. 이들에 대한 논의가 가능했던 것은 유학적 업적은 물론, 추숭을 통해 도덕적 평가가 완료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몽주의 문묘 종사는 사림세력의 도통의 계보를 확립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에 따라 정몽주는 도학의 시조가 되었고, 길재도 이 계보에 포함되어 도학의 전승자로 인식하게 되었다.이러한 조선 전기 고려수절신 추숭 경향은 여러 인물로 추숭 대상을 확대하기보다는 정몽주와 길재를 대표자로 선정하고 그에 대한 선양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THE CHOSON DYNASTY HISTORY ASSOCIATIONVol.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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