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mplementation and Ritual of Seogyeong’s Palgwanhoe during the regin of Goryeo King Taejo

고려 서경팔관회의 시행은 성종 이전에 시행되었음을 현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를 성종 이전 국왕 친행과 서경 관련 기록을 검토해, 태조대 시행되었음을 확인했다. 태조는 태봉 팔관회를 계승해 개경팔관회를 시행했고 이후 서경팔관회로 이어졌기에, 검토 시기는 태봉부터 고려 태조까지로 설정했다.태조 대 개경팔관회는 후삼국 통일을 전후로 의례 형식이, 천도와 궁성의 유무를 기준으로 의례 공간이 변화했다. 이는 총 다섯 가지 형식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서경팔관회는 시행 당시 개경팔관회 의례에 준해 설행했을 것이다. 따라서 서경팔관회 시행 상한(서경 궁성의 축조, 922년)과 하한(후삼국 통일, 936년)을 확인한 후, 앞서 분류한 개경팔관회 형식과 비교해 서경팔관회의 의례를 복원했다.당시 이주민으로 채워진 서경은 후삼국 통일 전쟁과 함께, 서경 도성 건설의 부담도 져야 했다. 서경의 불만은 각종 재이(災異) 현상으로 드러났는데, 이는 서경 사람들의 부담이 발현된 결과였다. 태조는 태봉 철원 도성 조영의 문제를 경험했고, 서경에 부과된 과도한 공부(貢賦) 문제도 인지하고 있었다.서경팔관회는 정기적으로 설행했던 축제 형식의 국가 의례라는 점에서, 서경도성 조영으로 인한 불만을 해소하는데 적합했다. 또한 평양으로 이주한 사람들에게 서경이라는 새로운 지역 정체성을 부과했다. 나아가 서경 도성 공역 부담을 완공 이후 경(京) 거주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으로 치환했다.서경팔관회의 특징은 섭행(攝行)으로 설행했던 경우가 많았기에, 태조와 관련된 의례는 제외한 채 백희가무 위주의 축제 의례로 설행했다는 것이다. 권력을 태조에게 집중시켜야 하는 개경팔관회와는 달리 서경팔관회는 서경 사람들을 위무하기 위한 추가적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후 양경팔관회의 의례형식이 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Cheonggyeo History
Published
2024-08-31
DOI
https://doi.org/10.33835/cghs.28.2
Primary Topic
Religious Studies and Spiritual Practices
Typ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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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mplementation and Ritual of Seogyeong’s Palgwanhoe during the regin of Goryeo King Taejo

Woo Sung KIm
Cheonggyeo History
Religious Studies and Spiritual Pract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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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mplementation and Ritual of Seogyeong’s Palgwanhoe during the regin of Goryeo King Taejo

Woo Su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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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고려 서경팔관회의 시행은 성종 이전에 시행되었음을 현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를 성종 이전 국왕 친행과 서경 관련 기록을 검토해, 태조대 시행되었음을 확인했다. 태조는 태봉 팔관회를 계승해 개경팔관회를 시행했고 이후 서경팔관회로 이어졌기에, 검토 시기는 태봉부터 고려 태조까지로 설정했다.태조 대 개경팔관회는 후삼국 통일을 전후로 의례 형식이, 천도와 궁성의 유무를 기준으로 의례 공간이 변화했다. 이는 총 다섯 가지 형식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서경팔관회는 시행 당시 개경팔관회 의례에 준해 설행했을 것이다. 따라서 서경팔관회 시행 상한(서경 궁성의 축조, 922년)과 하한(후삼국 통일, 936년)을 확인한 후, 앞서 분류한 개경팔관회 형식과 비교해 서경팔관회의 의례를 복원했다.당시 이주민으로 채워진 서경은 후삼국 통일 전쟁과 함께, 서경 도성 건설의 부담도 져야 했다. 서경의 불만은 각종 재이(災異) 현상으로 드러났는데, 이는 서경 사람들의 부담이 발현된 결과였다. 태조는 태봉 철원 도성 조영의 문제를 경험했고, 서경에 부과된 과도한 공부(貢賦) 문제도 인지하고 있었다.서경팔관회는 정기적으로 설행했던 축제 형식의 국가 의례라는 점에서, 서경도성 조영으로 인한 불만을 해소하는데 적합했다. 또한 평양으로 이주한 사람들에게 서경이라는 새로운 지역 정체성을 부과했다. 나아가 서경 도성 공역 부담을 완공 이후 경(京) 거주자가 누릴 수 있는 혜택으로 치환했다.서경팔관회의 특징은 섭행(攝行)으로 설행했던 경우가 많았기에, 태조와 관련된 의례는 제외한 채 백희가무 위주의 축제 의례로 설행했다는 것이다. 권력을 태조에게 집중시켜야 하는 개경팔관회와는 달리 서경팔관회는 서경 사람들을 위무하기 위한 추가적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후 양경팔관회의 의례형식이 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Cheonggyeo HistoryVol.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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