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 Hudam’s Sesigi and Its Sinicizing Aspects
성리학자들은 조선의 명절과 세시민속을 중국의 명절과 세시민속 지식으로 재생산하기 위해서 제례에 합당한 명절과 그때 올리는 시절 음식을 중국 책을 참고하여 정리하였다. 그래서 이 글은 조선의 명절과 세시민속에 한화(漢化)의 논리가 숨겨져 있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18세기에 이르면 백성들이 좋아하는 명절과 세시민속을 채록한 새로운 양식의 글인 세시기(歲時記)가 등장한다. 조선에서 세시기는 현전하는 문헌 중에 신후담(愼後聃, 1702~1761)이 1717년에 쓴 『세시기(歲時記)』에서 처음으로 확인된다. 그래서 이 글의 목적은 신후담의 『세시기』를 민속지적 기록 사례로 가정하고 조선시대 명절과 세시민속에 한화가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기술(記述)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다.신후담의 『세시기』에서는 명절과 세시민속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편성한다. 정보 내용은 중국의 세시민속이 조선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착종을 일으키거나 형식만 취한 것이 있다. 중국의 세시민속이 문자로 조선에 전해지면서 특정 세시민속은 중국과 조선의 차이를 표현하는 관용어가 만들어졌다. 중국의 명절과 세시민속이 조선에 수용된 후 구어로 용어가 바뀌어서 표현되기도 하고 조선적인 내용으로 바뀐다. 이외에도 조선의 속방과 100년 전 문헌에서 세시민속의 내용을 취하고 신라와 고려 옛 왕조에서 세시민속의 유래를 소개하면서 유교적 미덕을 부각해서 재구성한다.신후담 『세시기』의 기술 방식을 확인한 결과 중국의 명절과 세시민속이 조선에서 궁궐을 중심으로 정착하고 백성들에게 영향을 주지만 한화 과정에서 많은 차이가 생겨났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우리나라 옛 왕조에서 비롯한 명절의 세시민속이 조선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발생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이러한 신후담의 『세시기』 출현 의의는 첫째, 조선에서 세시기라는 글쓰기를 처음 시도하면서 조선의 명절과 세시민속에 대한 정보를 집적해서 체계를 갖추려 한 의의가 있다. 둘째, 세시민속이 더 이상 교화 대상만이 아니다. 셋째, 구전하는 지식이 기술의 대상이다. 넷째, 『세시기』에서는 지식의 위계에서 방외에 위치하는 정보들에 가치를 두고 명과 실을 분명히 한 의의가 있다. 다섯째, 『세시기』의 등장은 분류학적 시도가 가능한 세시민속 자원이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
Authors
- Hyo Jung KIm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Cheonggyeo History
- Published
- 2024-08-31
- DOI
- https://doi.org/10.33835/cghs.28.6
- Primary Topic
- Historical Linguistics and Language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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