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Chunmu and the Great purification - Focusing on regional purification and grand purification ceremony -
672년 壬申의 난을 통해 집권한 天武천황은 畿內제와 같이 물리적으로 영역이 획정된 지배 공간뿐만 아니라, 비시각적인 공간개념의 설정과 상징의 구현을 통하여 왕권을 보강해 간 측면이 강하였다. 먼저 물리적으로 확장된 통치영역은 천황의 덕화가 미치는 공간인 ‘四方’으로 새롭게 재구성되면서, 國造와 郡司에 대해서는 천황 통치영역의 신성성 유지를 위해 祓物의 공출이 부과되는, 이른바 정화 이데올로기를 통한 지방 세력의 견제장치로서 ‘四方大解除’가 설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국조뿐만 아니라 천황제 질서에 시급히 복속시켜야 할 대상은 大和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었던 東西文部씨였다. 동서문부씨는 중앙 조정의 정화의식인 ‘六月十二月晦日大祓’ 의식에서 ‘上祓刀·讀祓詞’ 의식을 담당하였다. 대불의식은 천황과 百官男女에 대한 정화의식이지만, 불도를 진상하며 만세를 연발하는 ‘上祓刀·讀祓詞’ 의식을 도래계 씨족이 수행한다는 점에서, 도래계의 독자성이 드러나는 복속의례라고 볼 수 있겠다. 대불의식의 성립시점에 대해서는, 천무조 말년 혹은 동서문부씨가 ‘忌寸’에 사성되는 天武14년(685)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야마토 조정시기부터 강력한 세력이었던 동서문부씨의 복속의례적인 解除의식이 주효한 시기는 천무조 초반일 것이다. 천무천황의 東漢씨에 대한 大恩의 하사가 이루어지는 天武6년(677) 6월의 시점이야말로 복속의례적인 ‘上祓刀·讀祓詞’ 성립의 개연성은 충분할 것이며, 동한씨의 大恩하사(天武6년)→ 동서문부씨의 ‘上祓刀.讀祓詞’ 의식의 성립→ 의식봉사에 따른 ‘忌寸 賜姓’(天武14년)의 흐름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합성을 띤다고 생각한다.平安시대로 이행하면서 대불의식은 천황 혹은 內裏의 정화에 목적을 두게 된다. 동서문부씨의 복속의례적인 의미가 퇴색해 감에도 불구하고 ‘上祓刀·讀祓詞’ 의식은 동서문부씨로 한정되었으며, 『延喜式』 과 『儀式』 등의 헤이안 시대의 의식서에도 특별한 역할은 설정되었다. 즉 百濟王씨가 改·賜姓없이 ‘백제국의 왕’이라는 상징성을 헤이안 시대까지 견지하듯이, 일본 고대 위정자들의 관념상에서는 동서문부씨의 왕민화는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대불의식의 봉사↔君恩의 설정을 통하여 끊임없이 확인되고 새롭게 재설정되는 관계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Authors
- Jin-ah Jung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DAEGU HISTORICAL REVIEW
- Published
- 2024-08-31
- DOI
- https://doi.org/10.17751/dhr.156.325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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