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flict Between Koreans and Chinese Over the Dabeigou Land Dispute in Manchuria During the 1920s
다베이거우 토지분쟁은 1917년 3월, 다베이거우 관산의 중국인 관리인들이 관산의 절반을 한인에게 소작으로 제공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사건은 1931년 만주사변에 이르기까지 10년 넘게 중일 양국의 외교 현안으로 떠올랐다. 다베이거우 토지분쟁은 한인과 중국인, 그리고 중국 정부와 일본 정부 사이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복잡한 갈등으로 발전했다.만주지역에서 한인과 중국인 간의 갈등은 경제적 이해관계, 이방인에 대한 차별, 중국과 일본의 갈등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했다. 다베이거우 토지분쟁은 중국인과 한인이 소작 계약을 맺은 후 상호 불신이 어떻게 분쟁으로 발전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만주지역의 한인과 중국인 간의 토지분쟁에서 한인을 일방적인 피해자로만 볼 수 없으며, 중국인들 또한 일방적인 가해자가 아니었다. 이 갈등은 상호 간의 현실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만주지방행정당국과 일본영사관은 이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했다.남만주에 거주하던 한인들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자신들의 생존과 처지를 보장해줄 주체를 실리적으로 선택했다. 중국으로 귀화하여 한인으로서의 차별을 피하고 중국 정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되면 귀화를 선택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일본을 현실적인 보호자로 삼았다.
Authors
- Jung-Hyun Park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DAEGU HISTORICAL REVIEW
- Published
- 2024-08-31
- DOI
- https://doi.org/10.17751/dhr.156.205
- Primary Topic
- Korean Peninsula Historical and Polit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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