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4 February and 22-26 June 1848, the February Revolution and the Two Barricade Battles
1848년 2월, 프랑스는 1789년 이후 세 번째 혁명을 맞았다. 1830년 7월혁명처럼 혁명을 “날치기” 당해 군주정이 돌아오는 사태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한 파리의 민중은 임시정부를 압박하여 제2공화정을 선포했다. 혁명 직후 노동권이 탄생하고 성인 남성 보통선거권이 법령화됨으로써 파리 민중이 흘린 피는 결실을 보았다. 그러나 “1848년의 정신”이라고 불린 유토피아적 이상과 열광의 순간은 얼마 가지 않았다. 제2공화정은 6월봉기를 유혈 진압하며 유산자의 공화국으로 선회했다. 왜 2월의 바리케이드에서 함께 공화국을 탄생시킨 사람들은 6월에 또 다른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그토록 많은 피를 흘려야 했을까? 이 글은 파리 민중이 2월에서 6월까지 파리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혁명의 상징이었던 바리케이드를 둘러싸고 겪은 다양한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2월혁명부터 6월봉기까지 이어진 “파리의 봄” 동안 경제적 상황은 어려웠어도 파리 노동자들은 이번에야말로 새로운 평등의 공화국을 수립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열정에 넘쳐 있었다. 이 희망은 대의제 공화국의 현실과 충돌하며 좌절되었고, 그 결과 2월의 “승리의 바리케이드”는 6월에 “절망의 바리케이드”로 변했다. 그러나 패배한 후에도 바리케이드의 기억은 노동자들의 “저항의 레퍼토리” 속에 오랫동안 살아남았다.
Authors
- Yun-Kyoung Kwon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HISTORY JOURNAL
- Published
- 2024-08-31
- DOI
- https://doi.org/10.51786/rchf.2024.08.51.239
- Primary Topic
- Historical Studies and Socio-cultural Analysi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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