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erspective on HeukchiSangji Being Included in the Biographies of 『SamgukSagi』
흑치상지는 백제 멸망 후 당에 귀부하여 당이 토번과 돌궐을 경략하는 과정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끝내는 반역을 도모했다는 무고로 죽게 되었다. 흑치상지가 아랫사람을 부리는 것에 은혜가 있었고 그로 인해 평판이 좋아서 사람들은 그의 억울한 죽음을 슬퍼하였다. 이상의 내용은 『구당서』와 『신당서』 그리고 『삼국사기』의 열전에 실려있다.그러나 흑치상지의 행적은 그 성격을 간단히 정리하기 어렵다. 흑치상지는 ‘백제인으로 태어남→백제 멸망 후에는 당에 항복→다시 백제 부흥운동 활동→다시 당에 항복→백제 부흥운동세력 공격→당의 이민족 정벌전에서 무장으로서 큰 활약→무고죄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으로 정리된다. 백제사의 입장에서 보면 흑치상지는 백제 부흥운동군을 궤멸시킨 인물이며 이는 결코 내세울만한 행적으로 보기 어렵다.바로 그런 흑치상지가 『삼국사기』 열전 4권의 충신, 명장 유형의 인물로 입전된 것에는 여러 고려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았다. 먼저 자료적인 측면에서 다수의 중국 사서에 그의 행적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흑치상지는 중국측 사서인 『구당서』와 『신당서』의 열전 인물로 입전되었고, 이외 『자치통감』, 『책부원구』 등의 사서에서도 무장으로서 세운 공훈들이 기록되었다. 다음으로는 자국을 배반하고 중국 왕조에 충성을 다하였지만 결국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것을 보면서 자국사에 대한 애정과 권계를 나타내고자 의도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Authors
- Il Rye Choi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Journal of School Social Work
- Published
- 2024-08-31
- DOI
- https://doi.org/10.37924/jssw.95.3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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