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aguk and Gaya Kingdoms around Seomjingang in 6th Century
본 논문에서는 5~6세기 섬진강 교통로를 공유하던 가라국과 전라 동부지역 가야제국 간의 역학관계를 파악해 보았다. 그 과정에서 가라국에 있어 섬진강 교통로가 가지는 의미를 다시금 살펴보고, 그간 대사에 가려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자타(자탄)의 중요성을 함께 검토하였다. 이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br/> 전라 동부지역을 둘러싼 가야제국과 백제의 쟁탈전은 관련 기록과 물질 자료 전반에 걸쳐 가라국의 흔적이 확인된다. 그렇기에 이는 섬진강 교통로를 둘러싼 가라국과 백제의 직접적인 전쟁으로 받아들여지는 편이다. 그 연장선에서 때때로 가라국 쇠퇴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섬진강 교통로 상실이 언급되기도 한다.<br/> 분명 섬진강 교통로의 상실은 가야제국 전체에 있어 큰 악재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손실을 가라국 일국으로 한정할 경우, 피해 규모가 이와 비례하는가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가야제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라면 과거 포상팔국 전쟁과 같이 서슴지 않고 서로에게 칼을 겨누기도 했기 때문이다.<br/> 공교롭게도 가라국이 팽창하며 전라 동부지역으로의 영향력이 강해지던 시기 역시 인근 시점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확장이 전쟁에 기반한 것으로 파악하기는 어렵기에 경제 공동체라는 틀에서 외교가 시작되고 정립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섬진강 교통로를 보다 이른 시기부터 이용했을 남원의 기문(상기문) 정치체와는 “따로 또 같이”라는 말처럼, 협력 속에서 경쟁을 동반하는 관계로 나아갔을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가라국은 전라 동부지역을 향한 백제의 침공이 시작되자 섬진강 교통로를 통한 이익을 공유하던 기문(상기문)에 대한 지원을 늦춤으로써 전라 동부지역을 비롯한 인근 가야제국에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Authors
- Young-Geun Song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History & the Boundaries
- Published
- 2024-08-31
- DOI
- https://doi.org/10.52271/pkhs.2024.08.129.221
- Primary Topic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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