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gong(事功) in 17th-century Joseon and its Political Meaning

효종대는 국가운영의 방향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된 시기였다. 두 번의 큰 전쟁 이후 본격적인 국가 재건을 위한 조야의 노력은 효종 즉위 이후 본격화 되었다. 국방력의 강화와 이를 위한 국가재정의 확보,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는 것은 부국(富國)과 안민(安民)의 성취를 의미했다. 효종대 사공(事功)의 추구가 권장되었던 것은 안민을 해치지 않으면서 부국을 달성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결과였다. 사공 추구의 정당성은 왕안석의 신법에 대한 송시열의 인식에서도 알 수 있듯이 효종대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당대 지배층들의 광범위한 동의를 얻고 있었다.<br/> 한편, 사공의 추구에 대한 합의 속에서 ‘어떤 사공’을 성취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렸는데, 국가 운영의 측면에서 보자면 구체적인 제도나 정책의 시행 과정에서 관련된 실무자들과 이에 대한 비평자들의 논의를 통하여 드러났다. 당시 시행된 노비추쇄 정책에 대하여 이것이 ‘공리’를 지향한다는 비판이 잘 보여준다. 당대의 일반적인 인식에 따르면 공리의 가치는 안민을 해치는 패도(覇道)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지양되어야 할 것이었다. 사공 추구는 정당하지만 공리의 차원이어서는 옳지 않다는 것이 당대인들의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공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전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유계의 인식에서 보이는 공리에 대한 사유는 상기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그는 현실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상황에서는, 부국과 안민의 길 사이에서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을 도의와 공리 양자를 모두 성취하고 싶다는 말로 표현하였다. 공리에 대한 부정 일변도의 인식에서 벗어나 국가 운영의 현장에서는 공리도 포기할 수 없다는 인식은 17세기 조선의 성리학 정치사상의 내적 전환을 시사한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The Review of Korean and Asian Political Thoughts
Published
2024-08-31
DOI
https://doi.org/10.35161/rkapt.2024.08.23.2.35
Primary Topic
Asian Culture and Media Studies
Type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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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gong(事功) in 17th-century Joseon and its Political Meaning

Min Jung Lee
The Review of Korean and Asian Political Thoughts
Asian Culture and Media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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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gong(事功) in 17th-century Joseon and its Political Meaning

Min Ju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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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효종대는 국가운영의 방향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된 시기였다. 두 번의 큰 전쟁 이후 본격적인 국가 재건을 위한 조야의 노력은 효종 즉위 이후 본격화 되었다. 국방력의 강화와 이를 위한 국가재정의 확보,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는 것은 부국(富國)과 안민(安民)의 성취를 의미했다. 효종대 사공(事功)의 추구가 권장되었던 것은 안민을 해치지 않으면서 부국을 달성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결과였다. 사공 추구의 정당성은 왕안석의 신법에 대한 송시열의 인식에서도 알 수 있듯이 효종대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당대 지배층들의 광범위한 동의를 얻고 있었다.<br/> 한편, 사공의 추구에 대한 합의 속에서 ‘어떤 사공’을 성취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렸는데, 국가 운영의 측면에서 보자면 구체적인 제도나 정책의 시행 과정에서 관련된 실무자들과 이에 대한 비평자들의 논의를 통하여 드러났다. 당시 시행된 노비추쇄 정책에 대하여 이것이 ‘공리’를 지향한다는 비판이 잘 보여준다. 당대의 일반적인 인식에 따르면 공리의 가치는 안민을 해치는 패도(覇道)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지양되어야 할 것이었다. 사공 추구는 정당하지만 공리의 차원이어서는 옳지 않다는 것이 당대인들의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공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전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유계의 인식에서 보이는 공리에 대한 사유는 상기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그는 현실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상황에서는, 부국과 안민의 길 사이에서 그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는 신념을 도의와 공리 양자를 모두 성취하고 싶다는 말로 표현하였다. 공리에 대한 부정 일변도의 인식에서 벗어나 국가 운영의 현장에서는 공리도 포기할 수 없다는 인식은 17세기 조선의 성리학 정치사상의 내적 전환을 시사한다.

The Review of Korean and Asian Political ThoughtsVol.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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