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King Kojong’s Red Ginseng Monopoly in 1898-1898
1899년에 홍삼 전매제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전매제 시행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연구는 미흡했다. 본고는 1898-1899년에 걸쳐서 황실이 홍삼 전매제를 시행해 간 과정을 고찰했다.<br/> 황실의 홍삼 전매제 추진은 이용익의 활약에 좌우되었다. 1897년 말에 이용익은 삼포민의 수삼 매매를 금지했다. 황실은 홍삼 제조를 독점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 수삼 일괄 수매가 요구되었다. 이용익의 수삼 매매 금지에 대해서 삼포민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독립협회도 이용익의 활동을 비판하고 사법부에 고발했다. 이에 이용익은 일시 몸을 피했다. 그래서 그는 1898년의 홍삼 제조에도 관여할 수 없었다. 그를 대신해서 홍삼 제조를 감독한 관리들은 비리를 일삼았다. 이런 상황에서 홍삼 전관은 거의 진전을 보지 못했다. 1899년에는 이용익이 홍삼 제조를 감독했다. 그는 개성에 삼업공세사를 설치했다. 이 기구는 이용익의 지휘를 받으면서 개성에서 인삼업 관련 제반 업무를 처리했다. 황실은 이를 통해서 잠정을 장악해 갔다. 그리고 이용익은 홍삼 제조기간 대부분을 개성에 체류했다. 이 역시 홍삼 제조를 장악하기 위함이었다. 더 나아가서 이용익은 수백 명의 병사와 백 명이 넘는 경찰을 개성에 주둔시켰다. 이는 불법 홍삼 유통을 단속하기 위함이었고, 실제로 불법 홍삼 유통은 위축되었다. 그런데 군대 주둔은 개성 삼포민의 반발을 억누르는 효과도 있었다. 1899년에도 황실은 수삼의 자유 매매를 금지했고, 삼포민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었다. 그런데 이 해에는 삼포민들이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수백 명의 병사가 주둔해 있는 상황에서 삼포민들은 쉽게 저항 운동을 전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br/> 이러한 이용익의 활약을 바탕으로 황실은 홍삼 전매제를 시행할 수 있었다. 황실은 홍삼 전매제를 통해서 큰 수익을 얻었다. 반면 삼포민들은 황실이 정한 가격에 수삼을 판매해야 해서 경제적 손실이 불가피했다. 그로 인해 이후 수년 간 인삼업은 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일제는 황실의 홍삼 전관을 거의 그대로 이어 받으면서 손쉽게 홍삼 전매제를 시행할 수 있었다.
Authors
- Jeong Pil Yang
Publication Details
- Journal
- The Journal of History and Practical Thought Studies
- Published
- 2024-08-31
- DOI
- https://doi.org/10.31335/hpts.2024.08.84.99
- Primary Topic
- Food Quality and Safety Studies
- Type
- article
-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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