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the Establishment, Operation, and Relocation Discussion of the Sangnam Motion Picture Production Center in the 1950s

이 연구의 목적은 미국 국가문서기록관리청(NARA)에 소장되어 있는 주한미공보원 자료에 대한 역사적 문헌연구방법을 통해, 1950, 1960년대에 미국공보처(USIA)로부터 ‘현지영화 제작의 중심’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주한미공보원의 현지영화 제작시설이었던) ‘상남영화제작소’의 건립 과정과 제작 활동, 그리고 상남영화제작소의 이전(移轉)과 관련된 1950년대 미 국무부와 주한미공보원의 논의들을 살펴보는 데 있다. 연구 결과, 1952년 말에 단행된 상남영화제작소의 설립은 미국 정부의 정책적 입장 변화와 함께 주한미공보원의 상황 인식이 작용한 결과로서 이뤄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6.25전쟁 발발로 인해 당시 촬영에서부터 현상, 프린트까지 영화 제작의 전 과정을 해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영화제작소였던 진해영화제작소의 영화 품질에 대한 미 국무부의 평가가 매우 긍정적인 상황 조건에서, 진해영화제작소의 제작 역량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주한미공보원 영화과장 대리 윌리엄 G. 리지웨이의 전략적 판단이 적극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설립 이후 주한미공보원과 상남영화제작소의 제작 업무에서 최상의 중요성을 지녔던 것은 <리버티뉴스>의 제작·배포였고, 상남영화제작소는 미 국무부의 현지 영화 제작과 관련된 방침에 따라 USIA와 주한미공보원의 당면 공보 목표에 부합하는 문화영화 제작 활동을 활발히 수행했다. 그렇지만, 서울 본부와 멀었던 상남영화제작소의 지리적 입지는 한국 정부와의 업무 협조나 유능한 미국인 담당관 채용의 어려움 등 주한미공보원의 활동에 있어 잠재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 이전 등의 장기적 대안에 대한 검토가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주한미공보원과 이승만 정부 간의 불투명한 관계로 인해, 상남영화제작소의 이전은 실행되지 않았다. 상남영화제작소 이전을 둘러싼 논란은 196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재연되었고, 급기야 상남영화제작소는 공식적으로 1967년 5월 30일 미 국무부 방침으로 폐지되었다.

Authors

Publication Details

Journal
Media & Society
Published
2024-08-31
DOI
https://doi.org/10.52874/medsoc.2024.08.32.3.208
Primary Topic
Cultural Industries and Urban Development
Type
article
Field-Weighted Citation Impact
0.00
Contr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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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SEP
OCT
article

A Study on the Establishment, Operation, and Relocation Discussion of the Sangnam Motion Picture Production Center in the 1950s

Sangkil YOON
Media & Society
Cultural Industries and Urban Development
article

A Study on the Establishment, Operation, and Relocation Discussion of the Sangnam Motion Picture Production Center in the 1950s

Sangkil YOON
article en

Abstract

이 연구의 목적은 미국 국가문서기록관리청(NARA)에 소장되어 있는 주한미공보원 자료에 대한 역사적 문헌연구방법을 통해, 1950, 1960년대에 미국공보처(USIA)로부터 ‘현지영화 제작의 중심’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주한미공보원의 현지영화 제작시설이었던) ‘상남영화제작소’의 건립 과정과 제작 활동, 그리고 상남영화제작소의 이전(移轉)과 관련된 1950년대 미 국무부와 주한미공보원의 논의들을 살펴보는 데 있다. 연구 결과, 1952년 말에 단행된 상남영화제작소의 설립은 미국 정부의 정책적 입장 변화와 함께 주한미공보원의 상황 인식이 작용한 결과로서 이뤄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6.25전쟁 발발로 인해 당시 촬영에서부터 현상, 프린트까지 영화 제작의 전 과정을 해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영화제작소였던 진해영화제작소의 영화 품질에 대한 미 국무부의 평가가 매우 긍정적인 상황 조건에서, 진해영화제작소의 제작 역량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주한미공보원 영화과장 대리 윌리엄 G. 리지웨이의 전략적 판단이 적극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설립 이후 주한미공보원과 상남영화제작소의 제작 업무에서 최상의 중요성을 지녔던 것은 <리버티뉴스>의 제작·배포였고, 상남영화제작소는 미 국무부의 현지 영화 제작과 관련된 방침에 따라 USIA와 주한미공보원의 당면 공보 목표에 부합하는 문화영화 제작 활동을 활발히 수행했다. 그렇지만, 서울 본부와 멀었던 상남영화제작소의 지리적 입지는 한국 정부와의 업무 협조나 유능한 미국인 담당관 채용의 어려움 등 주한미공보원의 활동에 있어 잠재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 이전 등의 장기적 대안에 대한 검토가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 주한미공보원과 이승만 정부 간의 불투명한 관계로 인해, 상남영화제작소의 이전은 실행되지 않았다. 상남영화제작소 이전을 둘러싼 논란은 196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재연되었고, 급기야 상남영화제작소는 공식적으로 1967년 5월 30일 미 국무부 방침으로 폐지되었다.

Media & SocietyVol.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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